셜의 경계(+)



셜의 경계, 이하 셜경은 독자님과 글 얘기하다가 쓰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이 이토록 즐거울 줄은요. 생각지도 못한 글인데 덕분에 즐겁게 적었습니다.

우제와 유준이란 이름은 늘 함께 하는 친구가 지어주었고, 나머지는 시대에 맞게 제가 지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희진이란 이름을 참 좋아해요. 미인의 정석 같습니다.

글 배경은 1990년~2000년대 초반, 세기말-세기초입니다. 이 또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기라서 즐겁게 썼습니다. 글에서 나온 음악도 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여 선곡했는데요, 이탈리아에서 우제가 튼 보사노바는 리자 오노의 I wish you love 입니다. love 뒤에 me가 빠져서 나는 없고 ‘당신이 사랑하길 바라’는 것이 낭만의 절정처럼 느껴져요. 우재야 말로 낭만이니, 절정이니 하는 것과 가장 잘 어울리고요.

글 중 나온 식당도 다 과거에 존재했거나, 현재까지 운영하는 곳입니다. 외전에 나오는 딤섬 집은 '웨스턴차이나’라고 한남동 대사관 모인 골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10년 전쯤 자주 갔는데 맛있어요.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따듯한 자스민차를 서브해 준 게 기억 남습니다. 스치듯 나온 ‘삐에뜨로’도 예전에 있던 레스토랑이에요.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누군가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이따금 사무치게 슬픕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셜’이란 LP바는 신촌에 ‘담’이란 이름으로 존재합니다. 상당히 오래된 LP바예요. 실제로 병맥주를 팔고, 온 벽이 낙서예요. 사장님이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십니다. 가게만 따왔을 뿐 나머지는 허구입니다. ‘미네르바’란 커피숍도 진짜 있습니다. 여긴 원래 유명해서 다들 아실 거 같아요. 서울 미래유산으로도 지정됐습니다.

칼로쏘 마을도 실제 지명입니다. 이탈리아 북부는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데, 이쪽에 와이너리가 많이 모여 있어요. 전 화이트 와인, 그중에도 모스카토 다스티를 제일 좋아하는데요 마트에서 1, 2만 원대에 판매하고 있으니 드셔보세요. 이탈리아 북부 생산 와인을 골라 마시면 대개 비슷한 맛이 납니다. 시원하게 칠링해서 마시면 정말 행복해요.
 
그 시절을 재현하고자 표현을 고르고 골라 썼는데, 노력이 보일까 궁금합니다. 특정 단어가 그때도 있었는지는 매번 뉴스를 통해 검증했습니다. 뉴스 기사에 해당 단어가 없으면 가급적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메일을 e메일로 적은 것도 고증의 일환입니다. 사소하게는 두 사람의 이메일 주소도 한메일과 핫메일입니다. 그땐 구글이니, 네이버니 하는 것은 거의 쓰지 않았죠. 대부분 한메일이고, 일부 핫메일을 썼습니다. 야후도 있고요. 슬프게도, 천리안은 오는 10월 말에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하더라고요.

현우제가 과거 카메라를 잡았다던 설정은 그때 광고학과, 사진 전공 등이 유행했기 때문입니다. 신방과도 정말 인기가 많았죠. 드라마나 영화 주변인 중 한 명은 반드시 카메라를 잡았고요. 접속(1997)에선 라디오 PD가, 깃(2004)에선 영화 감독이, 연애소설(2002)엔 포토그래퍼가, 오버 더 레인보우(2002)엔 사진 동아리가 나오듯이요.

작중 희진은 작가 목정원을 모티프 했습니다. 공연 예술을 공부하고자 파리로 떠났다는 것에서요. 여기서 잠깐, 목정원 작가의 <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이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참, 혜화역에서 남자 친구가 기다린다고 말한 우희더러 영화 < 기생충 >을 오마쥬 했느냐고, 친구가 묻더라고요. 우연입니다. 2000년대 초반 하면 대학로부터 생각나거든요. 대로변에 쭉 뻗은 가로수부터 해서요. 민주는 영화 속 여러 인물을 참고했는데요,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건 < 접속 >에 은희가 아닐까 합니다. 프리랜서 라디오 작가로 나오는 은희의 대사를 아주 좋아해요. “프리랜서 수칙도 몰라요? 절대로 남을 밟고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는 은희의 철칙을요.

유준은, 그저 유준입니다. 다정한 힘을 가진 이에요. 선함을 표방하되 본인이 그리 착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요. 이기적인 척하지만 매번 양보하는 그가 착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도요. 제가 겪은 사람 중 가장 강유준 같은 부분만 긁어모았습니다. 정말로 비누 냄새가 날 것 같은 사람이에요. 종종 유준의 말에 제가 위로 받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글이어도 최선을 다 했습니다. 진실로, 셜경은 있음 직한 이야기를 꺼내어 제가 독자님을 설득하는 걸 목표했습니다. 대체로 잔잔하게 흘러 가나, 그 안에도 나름의 폭풍이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재밌게 읽어주시길요.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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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의 경계에는 연석이 있고 문의 경계에는 문턱이 있다. 한 사람이 경계에 서서 밟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무엇을 밟고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건너갈까. 강유준은 경계에 서 있다. 그는 과거-셜에서 나왔지만, 아직 그다음으로 발을 떼진 않은 상태인 것 같다. 그리고 그를 흔드는 것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현우제이다. 현우제는 강유준을 어디로 데려갈까?

현우제는 낯설고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과거에는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강유준에게 현우제는 이제 의문만을 남기는 사람이고, 더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알 수 없게 되는 순간, 느껴지는 왠지 모를 서운함에 더 그를 밀어내고 거부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미스터리를 안고도 결국 사랑하고 마는(혹은 사랑을 인정하고 마는) 강유준의 아슬아슬함. 감정과 앎이 일치하지 않는 순간이다. 미지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미지인 채로 사랑을 지속할 수 있을까? 정보와 지식의 격차를 겪는 사람은 안달하게 된다. (모르는 사람은 아는 사람보다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보수적으로 되고, 한발 물러나 안전한 바닥을 디뎌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의 불안은 선택의 시간을 종용한다. 항상 피하고 도망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유준. 하지만 그를 두번 도망치게 할 생각이 없는 현우제.

그 둘이 경계에서 만난다.

현우제 라는 이름은 ‘현재’라는 단어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것 같다.

셜이 이들의 과거라면 프리모바치오가 현재일까? 제목과는 달리 ‘셜’은 초반 이후로 잘 등장하지 않는다. 가끔 유준이 회상하거나 언급되는 정도이다. 이미 그곳은 우리의 현재가 아니다.

‘셜의 경계’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 또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셜과 프리모바치오의 사이, 즉 이 소설 전체가 자신의 현재 있을 곳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읽혔다. 주인공 둘 뿐만 아니라 ‘셜의 경계’에는 과거에 어떤 것을 남기고 온 사람들이 있다. 그게 꿈이고 옛사랑이고 후회일 수도 있다. 경계에 선 사람들은 용기있게 또는 불안과 함께 떠난다. 그리고 현재를 아낌없이 사랑할 것을 찾는다. 과거를 딛고 경계를 넘어서

이제 강유준은 셜의 경계를 뛰어넘어 나아간다. 어디로? 우리가 있는 현재로 현우제와 함께하는 영원한 첫 키스로.

이제 현재라는 단단한 땅을 디딘 강유준은 다시는 어디로 도망가지 않겠지? 그래도 나는 유준에게 한 번은 더 도망갈 기회를 주고 싶다. 오랜 시간 홀로 쓸쓸했을 사람에게 딱 한번은 더 관대해지고 싶다. 어차피 현우제는 포기하지 않고 쫓아올 테니까.

“그 누구의 행복도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익명의 독자님 감상문